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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선심 아닌 의무, 홍보 아닌 공시…'진짜' ESG는?

관리자 2023.03.02 09:02 조회 217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72)ESG 열풍을 넘어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ESG를 내세우는 기업, 기관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ESG를 평가하며 시상을 하는 기업, 기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동시에 ESG를 두고 '빛 좋은 개살구', '적당한 대외 홍보'라는 비아냥도 쏟아집니다. 도대체 ESG가 뭐길래 말 그대로 '난리'인 걸까요.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의미합니다. 기업 경영의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죠. 지금까지의 기업 평가가 '재무적 지표'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앞으론 ESG라는 '비재무적 지표'로 확대되는 겁니다. 혹자는 '돈',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추상적' 개념이라고 치부하곤 합니다. 정량화하거나 객관적인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말이죠.

여전히 다수의 기업은 ESG 경영을 선언만 했을 뿐, '진짜' ESG 경영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커다란 현수막과 대대적인 보도자료 배포로 ESG 경영을 홍보했는데, 실제 행동에 나선 것은 '봉사활동'이 전부인 것이죠. ESG 경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냉철한 자기 평가'와 '평가 결과의 공개'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서 말입니다. 어쩌면 ESG 경영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비아냥을 듣게 된 것은 이같은 '사짜' ESG 경영인 때문일 겁니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ESG 경영 보고서 등은 ESG 경영에 나선 기업이라면 당연히 해마다 공개되어야 하는 내용입니다. 이 보고서엔 어떤 내용이 담길까요. 공개해야 하는 내역을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미사여구로 가득한 기업 홍보자료'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환경 부문의 경우 , 기업이 기후변화에 미친 영향과 온실가스 배출량, 기타 환경오염물질 배출량과 환경규제 위반 내역 등이 담깁니다. 사회 부문의 경우, 사내 인력 구조(성별, 연령별, 채용형태별)와 개인정보 이슈, 지역사회와의 관계 등에 관한 내용을 공시해야 하죠. 지배구조의 경우, 이사회 및 감사위원회, ESG 위원회의 구성과 사내 뇌물 등 부패 및 윤리 문제 내역을 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문별 지표를 살펴보면, '비재무적'이라는 수식어가 '추상적'이라는 뜻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정량화 가능한 지표도 많을뿐더러, 기업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 역시 많습니다. 비정규직의 수는 얼마나 많은지, 직원들의 퇴사율은 얼마나 높은지, 각종 오염물질을 얼마나 배출하는지, 그 과정에서 관련법을 어기진 않았는지, 이사회의 구성(성별, 전문성)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그저 '수입'과 '지출'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중요한 정보 말입니다.

전 세계 ESG 경영의 흐름이 점차 거세지는 가운데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공개하는 기업 역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계 52개국에서 각 국가당 매출액 상위 100개 기업 가운데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내놓는 기업의 비중은 1993년 12%에서 2020년 80%로 급증했습니다.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중 매출액 상위 50% 기업 대부분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보고서에 담기는 내역들을 보면, 기업의 입장에선 얼핏 '양날의 검'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텐데, 보고율은 왜 이리 높아지는 걸까요.

무디스, 피치, S&P 등 대표적인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기업 평가에 이미 ESG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ESG 경영에 나서지 않는다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그 보고서에 담긴 내용에서 기업의 개선 노력이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기업의 신용등급 평가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겁니다.

아직까지도 '도대체 왜 이런 지표로 기업의 신용등급까지 평가하지?' 의문을 갖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ESG를 윤리적, 도덕적 관점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일 겁니다. ESG 중 환경 부문 지표만 보더라도, 이런 관점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디스, 피치, S&P가 과연 '지구를 위해서라면 손해도 감수하는 평가'를 내리는 곳일까요. 환경단체의 포지션을 빼앗기라도 하려는 걸까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담기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기후 악당 감별사'의 역할만 하지 않습니다. 그 기업이 향후 수출 과정에서 물게 될 탄소세를 가늠할, 향후 다른 기업과 원료, 재료, 부품 공급 계약의 체결 가능성을 가늠할 바로미터가 됩니다. 에너지 사용량은 그 기업의 효율성을 따지는 잣대가 됩니다. 에너지는 곧 '비용'이니까요.

보고서엔 기업 스스로 자사의 기후 리스크 및 기회를 분석한 내용도 담기는데, 앞으로 기업이 겪게 될 기후 재난이 무엇인지, 그 기업이 이에 맞선 대응책으로 준비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여름처럼역대급 폭우가 쏟아질 때, 리스크 분석을 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피해 규모와 복구 속도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겠죠. 분석을 해둔 기업이라면, 스스로 어느 지역의 공장, 그 공장에서 어느 시설이 폭우에 취약한지 알고 있고, 이를 위해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 계획을 세웠을 테니까요.

지배구조 및 사회 부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너 일가의 갑질 등 논란으로 매출액 1, 2위가 뒤바뀐 국내 식품업계의 사례는 한국거래소의 홈페이지나 ESG 관련 강연 등에서 ESG 경영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ESG 이슈는 회사의 매출에도, 기업의 주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가 앞다퉈 ESG 평가 툴을 세분화하고, 구체화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입니다.

신용평가가 달라지는데 투자라고 달라지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 ESG 투자가 갖는 무게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2020년 기준, 전 세계 운용자산의 35.9%에 달하는 35조 3,010억달러가지속가능투자를 향했습니다.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의 ESG 관련 자산 규모도 2019년 345억달러에서 2020년 4분기 1,061억달러로 3배가 됐습니다. 블랙록, JP모건, 골드먼삭스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투자은행 등도 ESG 지표를 근거로 투자에 나서고 있고요. 분명, ESG를 두고 '비재무적 지표'라고 불렀는데, 개념의 출발은 '비재무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기업에겐 '재무적 영향'까지 미치게 된 셈입니다.

글로벌 투자 기업 및 기관의 이러한 움직임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한국거래소는 GSIA(Global Sustainable Investment Alliance, 글로벌 지속가능 투자연합)가 분류한 ESG 투자 전략에 대해 위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여기엔 ESG 지표를 기준으로 투자 대상을 고르는 것을 넘어, 투자중인 회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 등 적극적인 행동도 포함됩니다.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네덜란드 연기금 운용사 APG와 노르웨이 국부펀드 GPFG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대표적인 곳들입니다. APG의 경우, 앞선 연재에서 소개해 드렸듯 우리나라에 ESG와 관련한 굵직한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지난 2020년, 정부가 그린뉴딜을 선언하고, 탄소중립을 논의하는 상황에서도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자 경고에 이어 보유하고 있던 지분 6천만유로 어치를 전량 매각했습니다.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져야 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 채 말입니다. (75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에 투자된 국민연금, 돈다발 쌓으면 성층권까지〉 참고)

2021년엔 탄소중립 선언이 무색하게도 국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강행되자 탄소중립위원회에 공개 서한을 보냈고, 2022년엔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 10곳을 '기후 포커스 그룹'으로 분류, 이들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비단 한국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APG는 지난 2021년 498개의 기업과 지속가능 및 거버넌스 이슈에 관한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또한, 자체적인 투자 기준에 따라 150개 기업과 15개의 정부 기금을 투자 배제 목록에 담았죠.

GPFG는 자신들이 세운 투자 기준에 따라 투자 대상 리스트를 관리하고 있는데요, 꽤나 많은 한국 기업들이 '투자 배제 등급' 또는 '관찰 등급'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KT&G와 포스코, 한전, 현대엔지니어링, 영풍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분류된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ESG 가운데 E(환경) 때문인 곳도, S(사회) 때문인 곳도, G(지배구조)때문인 곳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 두 곳 외에도 다양한 자산운용사와 투자기관이 기업에 직접 서한을 보내고, 이사회에서 적극 의결권도 행사하며, 투자금을 회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표로 정리해서 살펴봤던 K-ESG 지표만 보더라도 모든 항목을 채워 넣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ESG 경영을 선언하고, 야심차게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쓰고 싶어도 생각보다 '내 기업'의 정보를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당장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을 파악조차 못 하는 기업도 상당합니다. 전력 소비량이나 물 소비량은 고지서를 확인하면 알 수 있겠지만, 대기업이 아닌 이상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해본 적도, 측정할 줄도 모르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각종 지표를 기입할 때엔 특정 기준을 따르게 됩니다. 담당자 마음대로 넣고 싶은 정보만 넣고, 빼고 싶은 것은 빼는 게 아니라, 정해진 양식을 따르는 셈이죠.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이 따르는 기준 가운데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 기후변화 관련 재부정보공개 협의체)의 기준이 있습니다. 사단법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TCFD의 기준에 따라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작성하는 국내 기업만도 어느덧 145곳에 달하며, 전 세계적으론 4천개 넘는 기업들이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TCFD가 마련한 양식을 잘 채워나가고 있을까요. 법무법인 지평의 기업경영연구소는 국내 100개 기업의 TCFD 권고안 연계 보고 현황을 분석했습니다. TCFD가 강조한 11개 권고 공개항목 중 몇 개를 공개중인지 살펴본 겁니다. 그 결과, 우리 기업의 평균 공시율은 23%에 그쳤습니다. 공시율이 그나마 높았던 항목은 온실가스 배출량(51%)과 경영진의 역할(46%)이었습니다. 기업의 기후변화 영향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인 온실가스 배출량 조차 49%의 기업은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던 겁니다. 기업 스스로의 리스크 분석 결과를 공개한 기업은 거의 없었습니다. 위험을 식별하고, 평가하는 프로세스를 공개한 곳은 5%에 그쳤고, 기업이 스스로 파악한 기후 관련 리스크 또는 기회를 공개한 곳도 10%에 불과했습니다. 정영일 지평 기업경영연구소장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도니 부분을 보완해 TCFD 대응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제사회는 기업의 이같은 기후공시 의무화를 속속 준비하고 있습니다. EU뿐 아니라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는 각각 공시 의무화를 앞둔 상태입니다. 말 그대로 '의무화'인 만큼, 거짓 공시가 이뤄지거나 공시가 불성실한 경우 기업에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우리나라도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ESG 공시 의무화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지금부터 공시 항목이 무엇인지, 공시할 데이터를 기업이 갖고 있는지 등을 확인해 준비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죠.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6일, 국내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올해 ESG의 주요 현안과 과제를 물은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코로나 팬데믹 여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올해의 경제 상황도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ESG 경영이 지난해보다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판단한 기업이 전체 61.6%(매우 중요해질 것 18.3%, 다소 중요해질 것 43.3%)에 달했습니다. 종종 국내 언론을 통해 “팬데믹 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녹색전환의 속도가 늦춰지고 있다”는 바람을 담은 뉴스가 들려오지만, 냉혹한 시장에 던져진 기업이 바라본 현실은 분명 달랐기 때문입니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437/0000333584?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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